[논문] 성경전서(1911) 번역사

성경전서 번역사 (p. 19)

유니크 바이블(unique Bible) 2024. 12. 29. 00:45

p. 19

 
삼일운동 기간에는 일부 권서는 지방의 연락책으로 민족 운동에 참여했다. 일제 10년간의 무단 통치 하에서 민중의 고통을 직접 피부로 느끼면서 민족의 독립 문제를 고민하던 권서들이야말로 한 지역의 지리와 사정에 누구보다 정통한 자들이었다. 1920년 영국성서공회의 연례보고서를 보자.
 
한 해 동안 권서 사역은 특별히 어려웠다. 어떤 권서는 ‘독립’ 운동에 연계되었기 때문에 체포 되어 경찰의 엄한 조사를 받고 있고, 몇 명은 아직 감옥에 있다. 여러 주 동안 권서 활동은 침 체되었다.... 경찰은 이 집 저 집 혹은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는 사람들을 매우 의심한다. 왜냐 하면 그들이 불온문서를 퍼뜨리거나 ‘위험한 사상’을 전파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76)
 
일본 순사들은 “권서들을 이집 저집으로 따라 다니면서 방문했던 집 사람들에게 왜 성 경을 샀느냐”고 물었고 “성경을 사지 않으면 나라에서 더 잘 보아줄 것이다”라고 공공연하 게 말했다.77) 한국인 권서에 대한 경찰의 방해는 만주에서도 진행되었다. 그러나 권서들은 꾸준히 성경을 반포했고, 투옥되는 권서들로 인해 일반인이 권서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 다. 따라서 삼일운동 이후 일부 권서들은 해외에서 본격화된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 모집자 나 전달자 역할을 했고, 이는 성경 반포와 독립 운동이 결부된 활동이었다. 그러나 이런 민 족운동에 깊이 관여한 권서들의 이름과 활동을 밝히는 작업은 아직 숙제로 남아있다. 다만 《대한성서공회사 2》에서는 확인되는 23명의 명단과 간단한 활동만 정리해 놓았다.78) 사 도행전적 삶을 살면서 복음을 전했던 ‘아름다운 발’의 복음꾼 권서들은 독립운동의 정보 전 달, 군자금 모집 등에 참여한 독립꾼이 되었고, 이근식처럼 일본군에 의해 살해되는 경우도 있었다.
 
4. 성경 완역 첫 희년(1960)의 역사의식
 
기념 예배
     1960년 4월 성서완역 희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있었는데, 당시의 인식과 논의를 정리함으로써 오늘 제2희년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려고 한다. 1960년 4월 2일 대한성서공회 는 “한국어 성서 완역 희면 기념 예배”를 정동감리교회에서 드렸다.79)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는 설교에서 1910년에 국가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구한국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던 종 교사상, 윤리사상, 사회사상, 정치사상”도 무너졌는데, 하나님께서 성경전서를 선물로 주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배후에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80) 한경직 목사는 당대 의제 였던 민주주의의 기초도 성경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백낙준 총장은 교회 일치, 민족의 통일, 민주주의 수립을 위해서 성경의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81) 이승만 대통 령(4.19의거로 하야)은 치사를 보내고 “일인의 폭정으로 인연해서 우리 한인들은 우리 말과
 

                                                                                 

76) Annual Report of the BFBS for 1920, 187; 《대한성서공회사 2》, 402-404.
77) Annual Report of the American Bible Society for 1920, 343; 《대한성서공회사 2》, 404.
78) 《대한성서공회사 2》, 407-408.
79) 예배는 변홍규의 사회로 기도 마경일, 성경봉독 강흥수, 설교 한경직, 성서번역의 약사 낭독 김양선, 치사 대 통령 리승만, 축사 라배생, 맥콤, 백낙준, 축도 김창근 등이 참여했다
80) 한경직, “영영한 기초,” <성서한국> 한국어성서완역 희년특집호 (1960년 5월): 5.
81) 백낙준, “영원히 켜져 있는 등불,” <성서한국> 한국어성서완역 희년특집호 (1960년 5월): 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