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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신약(Palmer's edition)과 히브리어 성경을 저본으로 채택했다.27) 나중 된 자가 처음 되 듯이, 한글 성경 번역은 19세기 말에 시작되었으나 영어, 한문, 일본어 성경에 뒤지지 않는 좋은 번역 성경을 만들 수 있었다.
넷째, 번역 방법과 원칙에서 로스의 의역과 직역의 조화, 언더우드의 직역 원칙과 천 주교 한글 연구 성과 수용, 게일의 한국어 용례에 맞는 줄인 번역과 의역, 레널즈의 문학적 인 번역이 종합되었다. 초기 한글 성경은 언더우드의 직역 원칙을 근간으로 하되 다양한 번 역 이론과 방법을 수용함으로써 한 권의 연합 성경이 추구할 모델을 수립했다. 곧 구역 성 경전서는 직역에 의역을 가미한 유연한 번역이었다. 동시에 다양한 다른 번역본이 공존하지 않는 상황적 요인과 1910년대 후반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 등으로 언더우드의 직역 원칙은 이후 한글 성경 번역에서 계속 유지되어 왔다.
다섯째, 철자법의 표준화와 근대화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로스는 서울에서 출판 된 유교 경전의 한글 번역을 참고하는 등 철자법 표준화에 고심했는데, 그 한 예가 사라진 음가인 아래 아(ㆍ)의 표기를 줄인 것이었다. 그 결과 ‘하ᄂᆞ님’을 1882년에는 ‘하느님’으로 했으나 1883년부터는 ‘하나님’으로 수정 표기했다. 1902-1903년 게일과 이창직은 새 철자 법(Gale System)을 제안했다. “한 음에 한 글자 원칙”으로 내용은 다음 세 가지였다. 1) 아 래 아 ‘ㆍ’를 폐기하고 ‘ㅏ’로 대체한다. 2) 목적격의 아래 아는 ‘ㅡ’로 바꾼다. (예, ᄅᆞᆯ ⟶ 를) 3) ㅅ, ㅈ, ㅊ + 복모음은 단모음으로 변경한다. (예, 쟈, 댜, ᄌᆞ ⟶ 자) 이를 적용하면 인쇄 활자를 170개에서 140개로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서북 방언을 표시할 수 없다는 이 유로 게일 철자법을 강하게 거부한 북한 지역 교인들의 반대로 게일 철자법은 성경에 채택 되지 않았고, 1904년 성서위원회는 구철자로 회귀했다. 그 결과 1904년 일본에서 출판된 신약전서는 신 철자로 된 원고를 구 철자 원고로 필사하는 과정, 일본에서 교정, 인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자가 발생했고, 교정 책임자 켄뮤어 총무는 신경쇠약에 걸려 사임하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개역 성경전서(1938)까지 한글 성경은 아래 아가 있는 구 철자법 을 고수했는데, 이는 서북 교회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러나 게일, 엥겔, 베어드, 헐버트와 한 석진, 김흥경, 김필수, 주시경 등은 한글 맞춤법 근대화를 위해서 계속 노력했다. 게일과 주 시경 등은 1904년부터 한글의 가로쓰기도 주장했다.28) 1909년 게일, 주시경, 안 신부, 다 카하시 토루(高橋亨) 등은 한어연구회를 조직한 데서 보듯이,29) 게일과 ‘한글 연구의 왕’ 주시경은 한글 연구와 철자 개혁에 동역했다.
여섯째, 언더우드와 게일은 번역 과정에서 <그리스도신문>을 발간하고, 영한사전, 한
27) 로스의 진보적인 신학은 옥스퍼드대학교 중국학 교수 레그(James Legge)와 교류하고, 1882년에 최신 사본 학과 성서비평을 반영한 그리스어 개정 신약전서(1881, 옥스퍼드판)를 번역 저본으로 채택하고, 표준 본문의 흠정역(KJV)을 개역한 영어 개역본(RV, 1881)을 참고한 데서도 드러난다. 로스는 한글 번역본이 최신 원문 과 영어 개역본의 첫 번역본인 점을 자부하면서 정확한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고, 동시에 비평적 사본 읽기를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1882년판 요한복음은 영어 개역본처럼 7장 53절-8장 11절의 간음한 여인 사건을 생략하고 번역하지 않았는데, 그 본문이 “진정성에 대한 증거가 없지 않지만 신빙성이 부족”했기 때문 이었다. 즉 그 본문이 마가복음 16장 8절 이후 부분처럼 후대 사본에 첨가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1883년부 터 로스 역본이 영국성서공회 지원으로 출판되면서 공회가 ‘표준 본문’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였으므로, 1883 년판 요한복음과 1887년의 《수셩교젼셔》에는 간음한 여인 사건 본문이 들어가게 된다. 그 결과 로스의 1882년판 요한복음은 한글 성경 역사에서 8장 앞부분의 간음한 여인 사건이 없는 유일한 책이 되었다.
28) 류대영 옥성득 이만열 《대한성서공회사 2》 (대한성서공회, 1994), 59-64, 80, 117-118, & 145; Ross King, "Western Protestant Missionaries and the Origins of Korean Language Modernization," Journal of International and Area Studies 11-3 (Seoul National University: 2004): 7-38; 옥성득 이만열 《대한 성서공회 역사자료집 2: 켄뮤어 서신, 1900-1905》 (대한성서공회, 2007).
29) <每日申報>, 1909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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