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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연합지부를 설치하고 여러 선교회들과 협력하면서 성서사업은 초교파적인 연합 사업 으로 자리 잡았다. 아펜젤러를 대신해 남장로회의 레널즈가 1902년 전주에서 서울로 이전 하여 번역에 전념하게 되고, 북장로회가 서울의 언더우드와 게일에게 신약 번역을 주 임무 로 임명하면서, 신약 공인본 번역이 본격화되었다. 1902년 10월부터 1906년 3월까지 이들 은 555회의 독회를 열었다. 1904년에는 신약 절반을 재수정했으며, 1905년에는 서울 감리 회출판사에서 수정본을 인쇄했고, 1906년에는 고린도후서까지 공인 본문인 신약전서를 동 경에서 출판할 수 있었다.5) 번역자회 독회는 주 5일 오전 8:30-12:30에 열렸고 오후 2-4 시에 모이는 날도 있었다. 선교사의 개인역을 놓고 한국인 조사 3인과 함께 검토하되, 문제가 없으면 번역자회 본문으로 채택하고, 이의가 제기되면 히브리어, 한문, 일본어, 라틴어, 독일어, 불어, 영어 성경과 비교하고 사전과 주석을 참고하면서 토론하고 투표로 결정했 다.6) 신약전서 공인본은 1906년에 완성되었다.
레널즈는 1911년 성경전서가 출판된 후에 다시 한 번 한글 성경 역사를 정리하면서, 위의 구분을 수정하여 다음과 같이 4시기로 구분했다.
1. Efforts from without the Hermit Nation, 1875-1889
2. Individual versions by various missionaries, 1887-1898
3. Production of the Official Board's Version of the New Testament, 1897-1904
4. Authorized Translation of the Old Testament, 1904-19107
레널즈가 개인역 시기를 1898년까지로 잡은 것은 1898년에 피터즈(Alexander A. Pieters)의 <시편촬요>가 출간되었기 때문이었다. 1906년의 글에서는 신약전서 완역과 출 판의 관점에서 번역사를 정리했기 때문에 개인역 시기를 1893년까지로 잡았으나, 1911년 성경전서 완역과 출판의 관점에서 볼 때, 피터즈의 시편은 첫 구약 책의 번역, 출판이었으므로 시기 구분을 수정했다.8) 동시에 신약 번역이 1906년까지 계속되었지만, 그보다 1904 년부터 번역자회가 구약 번역에 착수했으므로, 1904년부터 1910년까지를 번역자회가 구약의 공인 본문을 번역한 시기로 보았다.
레널즈가 정리한 구약 번역 과정을 보자. 구약은 1904년 10월에 새로 번역하기 시작 했다. 시편과 창세기(언더우드)와 사무엘서(게일) 일부가 번역되어 있었으므로, 1905년 11 월까지 출애굽기 일부분, 민수기, 여호수아,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잠언, 이사야 일부분 등의 초고를 준비했다. 그러나 언더우드와 게일의 안식년 휴가로 레널즈가 한국인 조사들과 번역에 들어갔다. 원고 통과에 3표가 필요했으므로, 성서위원회는 한국인 조사 이승두와 김 정삼을 정식 번역위원으로 임명했다. 1907년 미국성서공회 팍스 총무와 영국성서공회 릿슨
5) 게일에 따르면 1893-1897년에 신약 번역자회 독회에서 하루 평균 7-9절 정도를 완성했으나, 1897-1900년 에는 20-27절의 본문을 확정했고, 1900-1904년에는 10절 정도를 수정했다. 신약전서가 7,950절이므로 독회 하루 분량이 10절이라면 신약은 독회에 2년 4개월이 걸리고, 구약전서는 23,150절이므로 동일 속도라면 독 회에 14년이 필요하고 1918년에 완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J. S. Gale to A. J. Brown, January 19, 1904.) 1906년에 완성된 신약 공인 본문에서 게일은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계시록을 책 임졌다.
6) W. D. Reynolds, "The Board of Bible Translators," Korea Mission Field (April 1906): 103. 신약 독회 에서 하루에 6-8절을 확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약은 오전 독회로 40-50절을 번역할 때도 있었다. 7) W. D. Reynolds, "How We Translated the Bible into Korean," Union Seminary Magazine XXII (1910-1911): 292-303. 8) 아펜젤러가 1897년에 <죠션크리스도인회보>에 연재한 사무엘서 본문 주석은 구약 번역의 시작이었고, 언더우 드가 1901년부터 <그리스도신문>에 연재한 창세기 본문 주석은 인쇄된 첫 창세기 번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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